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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생

[석율준식] 쓰다 중단한 글... “미쳤니?” 다짜고짜 팔을 붙들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대는 상대에게 해 줄 말은 한 마디뿐이었다. 너 미쳤냐고. 겉모습만으로 섣불리 타인을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, 지금 그 말이 딱인 것 같은 차림새다. 어디서 이런 색들로만 옷을 사왔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. 아니 옷뿐만 아니라 자로 재고 자른 듯 길게 일자로 마무리한 뒷머리는 그렇다치는데, 5대 5로 반듯하게 갈라 기와를 세우듯 유선을 그리며 옆으로 뻗어가는 앞머리는 이유조차 모르겠다. 미를 사랑하는 준식은 지금 매우 불편했다. 제 시야에 한가득 현란한 무늬와 컬러를 뽐내는 인간이 버티고서는 비켜주지 않는다. 오늘따라 단단하지만 가는 편인 제 팔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. 무식하게 생겨서 힘도 그만큼 무식하게 센 것 같다. “아, 이 팔 안 놔? .. 더보기
[해준백기] 무제 for 대물 마지막으로 본 하늘은 제 기분처럼 흐릿하기만 했다. 피부로 느껴지는 물기, 비가 오는 거였을까 그렇잖으면 네가 흘리는 눈물이었던가. “...기씨, 장백기씨.” 흔들리는 느낌에 천천히 정신이 들었다. 시야는 아직 흐릿했지만, 부옇게 보이는 실루엣만으로도 자신을 부르는 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. “아... 이, 니...” 목소리는 거칠고 채 단어를 만들지 못 하고 흩어진다. 눈꺼풀을 깜박거리는 속도가 더해질 수록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확연해 진다. 영문을 모르는 두려움, 허둥거림 더해가는 당혹감이 드러난다. “아, 한동안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거라 합니다.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어요.” 하얀 가운과 모자를 쓴 해준이 낯설다. 겨우 눈동자만 굴려 바라보는 벽이나 천장 모두 하얗고 눈부시다. 백기는 도무지.. 더보기
[석율백기] 파도 아래 꿈 햇살을 반짝거리며 반사하는 수면 아래로 푸른 바다의 깊은 속까지 비춰 보인다. 맑은 물은 그저 푸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보석 같기도 하고 때론 미지의 생명체처럼 살아 있는 것 같다. 투명해서 저 바닥까지 한눈에 다 들여다 보이는 바다를 보다 보면 절로 빠져 들어갈 것만 같다. 석율은 잔잔한 바다 위 서프보드에 엎드린 채 물 속을 하염 없이 들여다 보았다. 둥둥 떠다니며 멍하니 있노라면 자질구레한 근심걱정따위 다 잊을 수 있었다. 그때 뭔가 바닥에서 반짝하는 것을 본 것 같았다. 다시 보았더니 아무런 이상한 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물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보았다. 보글거리며 기포가 얼굴을 간지럽혔지만, 별다른 건 없었다. 내가 피곤했나 보다, 생각하며 해변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. 오늘은 이만 숙소.. 더보기
[석율백기] 미필적고의 for 리베 (월간리베 축전)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. 더보기
[해준백기] 무제 for 히히 한여름의 열기는 풀쪼가리 하나 보이지 않는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는 더욱 심한 법이다. 그것이 남학교의 점심시간이라면 배는 더 할 것이다. 백기는 잠시 창 밖을 내다보다 한숨을 쉬었다. 더위에 약한 백기는 그늘 한 점 보이지 않는 운동장에 서 있는 것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찔했다. 점심시간이라고 신나서 공을 차는 애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. 특히 올해 유독 눈에 자주 띄는 저 아이,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새까만 머리칼, 탄탄한 다리로 운동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내달리는 모습은 자꾸만 시선을 잡아 끈다. 예비종이 울리고 나서야 먼지와 땀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간신히 물만 축이고 교실로 돌아가는 애들 틈에서도 꼼꼼하게 씻은 후 예비해 둔 수건으로 닦고 들어간다. 그.. 더보기