"이제 그만 합시다."
금요일, 평소라면 한주의 마무리를 위해 사우나를 들를 터인 사람이 퇴근하고 잠시 얘기를 하자는 말을 하기에 이미 짐작했었다.
우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서로 뜻이 100% 맞는 것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. 그리고 대부분은 그가 뜻하는대로 말하는대로 따르게 되었다.
입시를 준비하던 학창시절부터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그 동안에도 어학연수를 다녀오던 길지 않은 순간에도 스스로가 정해놓은 틀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. 본인이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나열한 후 하나씩 리스트에서 지워나가는 것이었다.
다른 사람과 대하는 것도 다를 바 없이 너무 긴밀한 관계는 지양하되 적당히 웃어보이며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았다.
그렇게 잃을 것 없고 크게 얻는 것 없는, 적당히 욕심 내고 좌절하지 않는.
원인터에 들어오는 것도 스스로가 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, 인턴 기간 중에도 주변의 다른 인턴들과의 사이도 적절히 관리하였다.
굳이 득실을 따져 상대하는 것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애써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었다.
그렇게 26년간 쌓아왔던 철옹성 같던 스스로의 모습은 아직 채 다져지기 전이었나 보다.
스스로의 기준을 못 미친다는 조바심과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상처입은 자존심은 결국 제 사수인 그에게 대들게 하였다.
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놀랐고 다음에는 두려웠다.
자신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인정을 하고 감정을 뒤흔들 수 있는 존재는 처음이었다.
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리는 마음의 파도는 점점 더 높아져서 결국 저 자신을 삼켜버렸다.
통째로 삼켜진채 허우적거리다 이대로 감정의 바다 아래에서 떠오르지 못 해 질식할 것만 같을 때 결국 해준에게 토해내듯 고백을 하였다.
그랬다.
시작도 자신이 하였다.
그가 그동안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몰라도 먼저 마음을 내보인 것은 자신이었다.
오랜 세월 스스로 두르고 있던 금줄을 하나둘씩 걷어치우며 제 깊은 속까지 휘저은 것은 그였지만, 마음대로 허락해버린 본인 탓이다.
사귀는 사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안달하고 요구하고 갈구하는 것은 백기 혼자인 것만 같았다.
그랬다.
그랬기에 어느새 하나 둘씩 다시 제 마음을 금줄로 싸매기 시작했다.
누군가의 발이 닿은 적 없던 금기시된 성역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터이지만.
다시 나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나로 있길.
그런 작은 소망이 조금씩 그에게 전달되었을까.
그래서 이제 이별을 고하려는 것일까.
내가 먼저다.
먼저 말하는 것은 나다.
"이제 그만 합시다. 강대리님."
고백을 한 것도 나였으니.
안녕을 말하는 것도 나였으면.
당신은 이미 내 마음 속 집의 주인이지만 이제 더는 찾아오지 않기를.
첫사랑이여, 안녕히.
+++
강대리님은 결국 입 한마디 못 뗐지만....
사실 이별하는 거 쓰려던 건 아닌데. ㅜㅜ
전력 주제 너무 어려워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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